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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책 긴 편지
앙드레 고르, 임희근 옮김,『D에게 보낸 편지-어느 사랑의 역사』, 학고재, 2007
[180호] 2013년 10월 07일 (월) 정용준 소설가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

  책을 다 읽고 마지막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너무 짧은 책이라 한 나절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책장을 덮고 표지를 물끄러미 내려 봤다. 『D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 밑으로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는 연인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이 있었다. 부드럽게 웃고 있는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렸고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이 책은 편지 형식으로 씌어졌다. 정확하게 분류하면 에세이다. 때문에 소설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그 어떤 소설보다 소설적으로 읽었다. 만약에 누군가 최근에 읽은 소설 중 좋았던 게 있으면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의 제목을 알려줄 것이다.
  좋은 경험을 한 자들은 나름의 감동을 느낀 후에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좋은 곳이 있으면 함께 가려 하고, 좋은 영화가 있으면 보여주고 싶어 하며, 좋은 음악이 있으면 들려주고 싶어 한다.
  이런 경우엔 받아들이는 자의 입장과 마음보다(그들이 관심 없어 하고 심지어 싫어하더라도) 전하는 자의 욕망이 우선한다. 알려주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어떤 심정 탓일 것이다.
  같은 마음으로 나는 이 책에 대해 무슨 말이든 하고 싶고 독후에 남는 인상을 어떤 식으로든 전하고 싶어졌다.
  이 짧은 지면을 통해 책에 대한 멋진 해석과 분석을 할 순 없지만(실은 그런 재주도 없다) 책을 읽고 난 후 마음을 오고 간 지극히 사적인 생각들과 감정은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미리 앞당겨 하려는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재미있고 좋은 책입니다.
  부디 꼭 읽으세요.
 
  『D에게 보낸 편지』의 발신인은 철학자 앙드레 고드이고 수신인은 그의 아내 (D)도린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남편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그대로 출판한 것이다.
  먼저 이런 의문이 든다. 왜 우리는 남의 편지를 읽어야 할까. 편지는 일기와 함께 가장 사적인 글이다. 일기는 글을 쓴 본인만 읽을 수 있고 편지는 발신자가 선택한 단 한명의 수신자만 읽을 수 있다. 편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목적이 없기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하다. 게다가 이 편지는 남자가 여자에게 바치는 연서가 아닌가.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남녀가 사랑하며 평생을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 있는 의견을 나직한 목소리로 들었다.
  장식이 없고 차분한 음성은 신뢰가 느껴졌고 세계의 모순과 풍파를 담담한 걸음으로 뚫고 걸어온 철학자의 삶의 자리는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적이어서 믿을 만했다. 사적이기에 그의 사랑은 뜨거웠고 사적이기에 고백은 감동적이었다.
  나는 문학이 가장 문학적이게 느껴지는 순간은 독자가 작가의 사적인 어떤 순간을 발견할 때라고 믿는다. 다시 말해 문학에서의 동의와 공감은 지극히 사적인 방식으로 오고 간다. 마치 친구를 만날 때처럼 혹은 연인을 만날 때처럼 깊고 내밀하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의 사적인 마음이 담긴 편지를 통해 그의 생각과 그의 인생에 동의했고 그의 독자가 되었다.

  여든세 살의 앙드레 고드는 평생을 철학자의 아내로 살아온 여든두 살의 아내 도린에게 편지를 쓴다. 그녀는 낫지 않는 병을 얻어 고통 받고 있다. 그녀는 고통을 감추고 의연하게 살았고 주위 사람들은 그녀가 아주 건강하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고드의 눈에는 그것이 보인다. 고드는 도린이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 지난 삶을 돌이켜 헤아려봤다. 그녀는 그가 그 자신이 될 수 있게 돕느라고 모든 것을 준 사람이었다.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으로 살아왔던 고드는 1983년 이래 모든 지적 활동을 접고 아내를 간병하는 것을 택한다. 그리고 아내와의 첫 만남부터 최근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편지에는 가난한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 청년 고르와 극단 배우였던 미모의 영국 처녀 도린이 등장한다.
  편지에서는 그들의 만남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그 세월 속에는 두 사람이 투쟁하고 싸운 세계의 부조리함이 드러나 있고 문학과 철학을 통해 겸비한 뛰어난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아내와 나눈 지적인 대화와 논쟁은 서늘하고 아름다울 정도다. 나는 이 지면을 통해 마땅히 써서 알려야 했을 편지의 내용을 감춘다. 당신이 직접 읽기 원하기 때문이다. 100쪽이 되지 않는 짧은 책이다.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앙드레 고드는 이 편지를 쓰고 1년 뒤 아내 도린과 함께 나란히 누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남은 삶으로 썼고 이 책을 가장 뜨거운 연애편지 중 하나로 만들었다. 그는 화자로서 이 책의 서사에 참여했고 쓰여지지 않은 마지막 에피소드에 등장함으로 가장 소설적인 이야기를 완성했다. 서사의 측면에서 이보다 멋지고 극적인 엔딩이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그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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