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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책-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야만시대의 기록
박원순,<야만시대의 기록>, 역사비평사, 2006.
정길화, 김환균 외,<우리들의 현대침묵사>, 해냄, 2006.
[138호] 2006년 12월 04일 (월) 박우성 편집위원

이번호에서 소개해드릴 두 권의 책은 역사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두 신간 모두, 동북공정과 맞물려 최근 한창 유행인 고대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국사교과서 끝자락에 달라붙어 언제나 시험범위 ‘밖’에서나 존재하던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문적 사학자가 아닌 실천적 지식인이 집필했다는 점도 유사하고,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계층의 관점을 다분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역사를 추적해 나가는 방법론적 차이 정도일 겁니다.

난데없이 질문 하나 던져봅니다. 혹시 고문을 당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물론 상투적인 비유로, 우리들의 삶 자체가 고문의 연속이지요. 남성분이시라면 언뜻 군대가 떠오르실 수도 있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똘똘 뭉친 그 숱한 가혹행위와 얼차려! 어쩌면 군대생활 자체가 고문이었지요. 그러나 최근현대사에 자행된 숱한 고문들에 비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일상적 고문은, 아니 고문을 당해봤냐는 식의 난데없는 질문은 사치스러울 따름입니다. 고문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 무엇인 까닭입니다.

시민운동가이자 인권변호사인 박원순씨가 일제시대부터 현정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자행된 고문의 흔적들을 샅샅이 찾아 총 세 권의 책으로 묶어 정리했습니다. 한 달 전에 발간된 좬야만시대의 기록좭이 바로 그것입니다. 구획을 나눠 살펴보면, 1권에서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고문에 대한 세밀하고도 다양한 접근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2권에서는 1권에서 정리된 개념들을 바탕으로 일제시대부터 박정희 정권까지 자행된 고문의 구체적 흔적을 처절하게 고증합니다. 3권 역시 2권의 연장선상에서, 전두환부터 현 노무현 정권까지 ‘끝나지 않는 고문의 망령’을 다루고 있습니다. 좬야만시대의 기록좭을 통해 우리는, 역사가나 법조인의 시선으로, 아니면 고문피해자나 그저 평범한 소시민의 눈으로 포장된 처절한 최근대사의 기록을 목격하게 되는 겁니다.

‘독립운동가’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피로 얼룩진 그들의 옷자락이 떠오릅니다. 굳이 푸코와 같은 사상가를 끌어들일 필요도 없이 감금과 고문이 권력의 유효한 통치수단임은 명백해 보입니다. 이 땅의 독립 기운을 잠재우기 위해 일제가 끌어들인 최고의 통치전략이 바로 고문이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해방된 조국에서도 이런 악습이 그대로 세습되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새로운 정부의 사찰권을 장악했던 주체가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던 일제 고등계 형사 세력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런 부조리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으로 이어졌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요. 충격적인 것은 이런 폭압적 세력에 저항했던 민주세력 또는 학생조직조차도 고문이라는 더러운 악습을 자행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그렇다면 도대체 고문이란 무엇일까요? 고문에 대한 현상학적 질문을 던지면서 저자는 일방성, 익명성, 갈등성, 변형성 따위의 용어를 끌어들입니다. 그러나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결국 해답은 하나입니다. 고문, 그것은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단어, 정의할 수 없는 개념’, 즉 가장 끔찍하고 아프고 비통한 일을 표현할 때에야 겨우 소환할 수 있는 단어인 것입니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된 고문의 구체적 유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저자가 정리한 고문 유형 중 몇 가지만 나열해 보겠습니다. ‘호스를 질이나 항문에 끼워 넣고 높은 압력으로 물을 유입’, ‘음경과 음낭에 무거운 물건 매달기’, ‘가해자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도록 강요.’

좬야만시대의 기록좭은 고문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서적이라는 점에서 선구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책입니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선, 실수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곳곳에 중복 인용되는 자료가 보입니다. 그러니까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구성하지 못하고 다만 자료의 나열에만 그친 느낌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자료 자체의 치밀한 분석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감정적 언사나 싱거운 평가에 그치는 점도 아쉽기는 마찬가집니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 과거 청산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친일문제, 민간인 학살문제, 의문사 문제 등에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고문문제는 여전히 그 어떤 조명도 받지 못하고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자의 바람처럼, 이번 좬야만시대의 기록좭이 제공하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고문피해자들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좬야만시대의 기록좭이 고문이라는 핵심단어로 최근대사를 풀어나가고 있다면 지금부터 소개할 좬우리들의 현대침묵사좭는 시대의 억압 속에서 도무지 발설할 수 없었던 ‘혀 잘린 말들’로 가득한 책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이미 TV를 통해 전달된 바 있습니다. 숱한 화제 속에 방영된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제작진이 다시금 의기투합해 취재수첩을 뒤지고 지난 기억을 되살려 어렵게 채워 나간 책이 바로 좬우리들의 현대침묵사좭인 까닭입니다.

중요한 것은 TV라는 매체가 가지는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장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정보들이 책을 통해 비로소 복원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방송국 PD의 것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세련된 문장도 우리의 주목을 끕니다. 그러니까 좬우리들의 현대침묵사좭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는 차원이 다른 하나의 독립된 역사서인 겁니다.

4부, 총 20여개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된 이 책은 한마디로 ‘역사의 이면사’입니다. 여기서 ‘역사의 이면사’라 함은 권력이 감춘 역사, 혹은 권력 때문에 감출 수밖에 없었던 역사를 지칭합니다. ‘5공의 3S정책, 스포츠를 지배하라’, ‘김재규는 왜 박정희를 쏘았는가’, ‘대한민국에는 강남공화국이 있다’ 등의 제목만 보더라도 이 점은 분명합니다.

에피소드 하나만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1970년대 왜곡된 개발주의가 만든 ‘무등산 타잔 박흥숙’을 기억하십니까. 저자는 가난한 도시 빈민 박흥숙이 어떤 이유로 살인을 저질러야만 했고, 또 박흥숙을 둘러싼 보도가 어떤 식으로 왜곡되었는지 세심히 파헤칩니다.

 아시다시피 1970년대는 국가적으로 개발이라는 지상과제를 수행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국가 주도의 개발정책은 구조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양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88올림픽 당시 성화봉송로의 미관을 해친다 하여 부천 어느 외진 땅 속에서 몇 년을 버텨야만 했던 가난한 사람들의 사연을 기억하시는지요. 무등산 타잔 박흥숙 역시 개발주의에 떠밀려 무등산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그저 평범한 산동네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언론은 사태의 본질을 철저히 외면한 채 그저 선정적인 표현으로 박흥숙을 매도합니다. 그러니까 박흥숙의 살인을 뒤틀린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잔인한 청년의 난동 정도로 몰아 세웠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무등산 타잔 사건’은 권력과 권력에 야합한 언론이 ‘짜고 친 고스톱’이었다는 말이지요.

최근 모처에서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이 열려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교사서 포럼’이 제시한 대안교과서에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담론들이 난무했던 까닭입니다. ‘5·16 군사 쿠테타’는 ‘5·16 혁명’이고 ‘4·19 혁명’은 그저 평범한 ‘4·19 학생운동’이랍니다. 한발 더 나아가 ‘10월 유신’은 ‘행정적 차원에서 집행력을 제고하는 체제’였고, ‘5·18광주민주화항쟁’은 ‘경제발전 소외감과 김대중 체포로 촉발된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역사를 이런 식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좬야만시대의 기록좭이 고증하는 고문문제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들에게 좬우리들의 현대침묵사좭의 ‘무등산 타잔’은 ‘경제발전 소외감’으로 살인을 저지른 탕아에 불과할까요?

박우성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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