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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생명 주기
테드 창, 김상훈 옮김,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북스피어, 2013
[179호] 2013년 09월 16일 (월) 유인혁 문학평론가

  이론적으로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소멸할 수 없다. 0과 1의 무수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소프트웨어는 그 어떤 물리적인 풍화작용도 거치지 않기 때문이다. 톱니바퀴가 마모되면 고장이 나는 시계나 발광 다이오드가 오래되면 수명이 다하는 디스플레이 장치와는 다르게,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사용에 따라 망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소프트웨어가 영원히 계속된다는 뜻이 아니다. 예를 들어 1995년에 출시된 MS사의 ‘윈도우즈95’ OS는 이제 사용되지 않는다. 당시의 ‘펜티엄’ 컴퓨터가 시대에 뒤떨어짐에 따라 빠른 속도로 도태되었기 때문이다. 1995년에  만들어진 ‘스와치’나 ‘롤렉스’ 시계가 여전히 명품 취급을 받으며 사용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즉 이론상 불멸하는 소프트웨어는, 수명이 정해진 물건들 보다 훨씬 짧고 간명한 생명주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2010년에 발간되어 올해 번역된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불멸하지만 영속하지 않는 소프트웨어의 생명주기를 다루고 있는 SF이다. 「0으로 나누면」이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통해서 수학과 언어학을 응용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고, 「숨결」에서는 열역학 3법칙을 재기발랄하게 인용했던 테드 창이, 이번에는 소프트웨어로 생성된 인공지능의 문제를 다룬다.
  멀지 않은 미래, 인간의 사교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가상세계로 옮아갔다. 데이터지구(data earth)라는 가상현실 플랫폼을 이용하는 안나 알바라도는 블루 감마라는 회사에 취직한다. 그녀는 소프트웨어 애완동물을 교육하는 일에 투입된다. ‘뉴로-블라스트’라는 인공지능 엔진이 실제 아기와 흡사한 학습능력과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강아지나 사자, 심지어 로봇과 비슷한 외형의 소프트웨어 생명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야기는 디지엔트라고 불리는 이 인공지능 애완동물의 개발, 베타 테스트, 상용화, 유행, 도태, 폐기라고 하는 소프트웨어 생명주기를 따라 간다. 흥미로운 점은 일종의 공산품(product)으로서의 생명주기가 진행되는 동안, 디지엔트들이 한 생명으로서 나름의 삶을 부여받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일어서 걷는 법을 배우고, 말을 익히고, 글을 깨치게 된다. 어른들을 보며 욕을 배우는가 하면 섹스를 흉내 낸다. 그들은 사춘기를 거치고, 진지하게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게 된다. 
  문제는 이들의 ‘삶’의 주기에 비해 공산품으로서의 생명주기가 너무나 짧다는 점에 있다. 이 인공지능 애완동물들이 교육을 받아 자아를 확립할 단계에 이르렀을 때, ‘데이터 지구’라고 하는 플랫폼은 몰락하고 만다.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플랫폼으로 옮겨가버렸다. 디지엔트들이 비로소 사회로 나아갈 시기에, 문득 세계는 황량하고 쓸쓸한 공간으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좋은 SF는 언제나 익숙한 문제를 환기시키는 한편 미래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케이트 윌헬름의『노래하는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는 인간의 자아형성이라고 하는 주제를 다루는 동시에, 유전자조작이 미래에 드리울 파국을 예고했다.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은 베트남전쟁이라고 하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한편 멜서스 인구론 식의 디스토피아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의 주제 역시 양방향으로 펼쳐진다. 이는 정확히 소설 안의 두 개의 생명주기(life cycle)을 따라 이루어진다. 우선 디지엔트의 ‘삶’은 우리에게 펫오너와 펫, 부모와 자식, 그리고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다. 뉴로-블라스트 디지엔트들은 이를테면 강아지처럼 주인에게 무조건 헌신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런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태어나, 주인의 양육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성장한다. 그들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고집을 피우고, 때때로 반항한다. 어떤 디지엔트는 다른 디지엔트보다 학습능력이 더디다. 어떤 디지엔트는 더 사교적이며, 혹은 더 활동적이다. 이들은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던 개성과 자유의지를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디지엔트들은 제작자와 주인의 의도, 혹은 유전자 엔진이 그들에게 마련해준 ‘본성’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이 힘들은 물론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실제 디지엔트들은 더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하게 자라난다. 그리고 이들을 ‘바르게’ 키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인의 몫이다. 우리는 디지엔트를 통해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개발에서 폐기로 이어지는 공산품의 생명주기는, 이윽고 변화할 생명의 정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상품으로서의 디지엔트는 데이터지구가 몰락했을 때 끝났다. 서비스를 제공할 주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엔트의 ‘삶’은 상품으로서의 생명주기보다 훨씬 오래 지속한다. 그들은 이론적으로 영생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디지엔트는 인간에 의해 지능과 감정, 그리고 자유의지와 개성까지를 부여받았다. 그들의 '삶'은 온전히 인간의 책임이다. 게다가 이 ‘소프트웨어 객체’들은 자신의 반려자와 애착관계를 형성했다. 그러니 이들을 폐기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피조물의 삶을 부당하게 종결짓는 것이다. 우리는 이 존재들을 유행이 지난 다마고치(1990년대 유행했던 휴대용 가상애완동물 육성 게임기)를 버리는 것처럼 쉽게 폐기할 수 있을까? 그들을 정지시키는 것은 윤리적으로 온당한가? 우리는 어떠한 기준으로 이 존재들을 대해야 할까. 인간기술의 발달은 생각보다 빠르게 상품을, 상품 이상의 것으로 만들지 모른다. 우리는 개성을 획득한 복제인간이나 인공지능을 어떻게 대면해야하는지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그러나 가까이 다가온 세상에 대해 사고하게 하는 것. 이것은 SF가 우리에게 주는 유의미한 경험 중 하나이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장차 인간이 가지게 될 수도 있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 관계나, 창조주로서 맞닥뜨리게 될 책임과 같은 것들을 상기시킨다. 아마도 우리는 이러한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을 통해, 자기의 피조물을 외면했던 프랑켄슈타인보다는 조금 더 현명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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