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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사태 : 두 가지 시선 6자회담 재개와 북한의 전략
- 시간은 결코 북한편이 아니다
[138호] 2006년 12월 04일 (월) 김용현 본교 북한학과 교수

지난 10월 31일 북·미·중 3국 수석대표가 6자회담 조기 재개를 합의함으로써 북한의 핵실험으로 가파르게 상승하던 한반도 위기 상황이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핵실험의 ‘낙진’이 가라앉고 외교의 계절로 접어들었다는 판단이다. 북핵실험 사태는 이제 장외에서 장내로 공간을 옮기고 있으며, 각국의 외교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12월 안에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6자회담 전격 복귀 결정은 그 동안 위기 지수를 극대화시켜 온 만큼, 이제는 외교를 통해 문제를 풀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북한은 핵실험 이후 미국과 유엔 안보리의 압박에 대해 정면대결 불사와 대화라는 이중 전술을 활용했다. 핵실험 직후 북한은 ‘비핵화 실현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미국이 대북 압력을 가중시킨다면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연이어 물리적인 대응조치들을 취해 나갈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또한 유엔안보리 제재결의안 1718호가 통과되자 북한은 ‘금후 미국의 동향을 주시할 것이며, 그에 따라 해당한 조치를 취해 나갈 것’임을 밝힘으로써 정면대응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10월 18일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국무위원의 방북과 10월 20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무장관의 방중을 기점으로 북한의 전략은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했다. 탕자쉬안 국무위원은 미국 방문에서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받았고, 북한 방문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미국의 입장과 중국의 대북 제재 동참 배경을 강한 톤으로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탕자쉬안 국무위원은 이후 10월 20일 라이스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다행히 이번 방북이 헛되지 않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이 말은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계획하지 않고 있고, 미국이 더 이상 대북압박을 하지 않는다면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는 의미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부터 북한은 협상 쪽으로 내부 방침을 정하고, 미국의 대응 조치를 예의주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전환에는 6자회담에 참여하더라도 핵실험을 통해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는 상황은 벗어났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유엔과 미국은 물론 중국조차 북한에 대한 배려보다는 제재에 동참하는 분위기라는 점을 고려해 더 이상 시간을 끌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판단했을 것이다. 핵실험이라는 벼랑 끝에 올라선 상황에서 추가 핵실험이나 미사일 재발사 카드의 파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중요한 배경이다.

미국의 전향적 태도도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핵문제를 북미 양자회담으로 풀려고 하는 북한에 대해 미국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나게 함으로써 명분을 확실히 줬다. 2005년 4차 6자회담 재개 때에도 힐과 김계관이 사전에 회담을 가짐으로써 북한의 회담 복귀 명분을 제공한 바 있다. 이라크 사태 악화와 11월 7일 중간선거 결과에 대한 미 행정부 내부의 우려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대해 압박을 하면서도 아울러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시점에, 2차 핵실험 등 북한의 사태 악화가 불러올 부정적 영향에 대한 부담을 가진 것이다.

핵실험으로 미국으로부터 체제를 보장받고 양국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한 북한의 핵카드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받아냈지만 곧바로 이어진 미국의 금융제재로 6자회담 참가를 거부해 온 북한은 금융제재를 푸는 해법으로 핵실험을 통한 위기 극대화를 선택했다. 반면 미국은 북한의 돈줄을 죄면 ‘의미 있는’ 북한체제의 변화까지도 가능하다는 판단 속에 금융제재의 범위를 확장시켜 나갔다. 위조화폐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고 힐 차관보를 초청하는 등 북한의 구애도 무시했다. 이런 가운데 이뤄진 북한의 핵실험은 미국으로부터 6자회담 틀 내에서 양자회담을 통한 금융제재 문제 논의라는 약속을 이끌어 냈다. 부수적으로 체제 내부의 단결이라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과 뒤에는 희생도 따르고 있다. 최대 후원국인 중국과는 이상기류가 형성되고 있고, 한국과의 관계도 못지않다. 단적으로 혈맹 중국은 유엔 제재결의안에 따라 북한으로 들어가는 물자에 대한 검색을 실시하고, 은행들은 대북송금을 잠정적으로 유보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중단한 50만 톤의 식량과 비료 등 인도적 지원을 여전히 중단하고 있다. 한국 내 반북 여론의 확산도 북한이 감당해야 할 큰 짐이 되고 있다. 여기에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국가 이미지는 더욱 추락하게 되었고, 인권문제 등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세적 움직임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그럼에도 북한의 핵실험은 금융제재로 막힌 현실을 돌파하려는 전략적 계산에 따른 조치로, 이 같은 희생은 이미 감수한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조기 재개 합의는 일단 큰 틀에서 우선 만나자라는 정도만 합의한 것으로 그 동안의 북핵사태가 장외에서 장내로 들어왔다는 의미가 있다.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대화 진행과정에서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북한은 당분간 외교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우선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 등 금융제재 문제 해결과 지난해 체결된 9.19공동성명의 확실한 이행을 통해 체제안전 보장과 핵 포기 대가로 에너지 지원 등을 요구할 것이다.

금융제재 문제는 6자회담의 틀 안에서 북·미간 양자회담을 통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로 북한 입장에서는 종전 ‘선 금융제재 해제, 후 6자회담 복귀’ 입장에서 ‘선 6자회담 복귀 선언, 후 금융제재 해제’로 한걸음 양보한 셈이다. 북한은 탕자쉬안 국무위원의 방북 때 금융제재 해결 전망이 보이면 먼저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6자회담 개최 이전에 금융제재 해제를 위한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미국이 금융제재문제를 논의할 수는 있어도 불법행위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경우, 향후 양국의 입장을 좁혀가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입장을 좁히지 못할 경우, 북한은 미국의 책임론을 극대화시켜 6자회담 불참 카드를 들고 나올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핵문제는 6자회담 틀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에서 북한은 일단 9.19공동성명 이전과 달리 이제는 ‘당당한 핵보유국임’을 자처하면서 협상 입지를 높이기 위해 핵군축을 주요 의제로 부각시킬 것이다. 이미 북한은 핵실험 직후 “세계적인 핵군축과 종국적인 핵무기 철폐를 추동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할 것”임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핵군축 요구는 ‘상호감축’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협상용 카드로 활용할 것이며, 결국 핵보유국에 걸맞게 핵포기에 따른 확실한 보상에 가장 중점을 둘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들이 북한이 수긍할 수 있는 보상의 보따리를 얼마만큼 푸느냐에 따라 6자회담의 순항 여부가 달려 있다.

9.19공동성명은 대미관계 개선과 경제문제 등 북한이 요구해온 사안들이 거의 다 포함돼 있지만, 북한의 선 핵 포기를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핵실험으로 ‘핵보유국’으로서 북한은 선 핵포기가 아닌 동시행동원칙을 고집하면서 그 실현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에 대해 미국과 북한이 어느 정도 유연한 대처를 하느냐도 6자회담의 진로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여론에 쫓겨 대화에 나온 미국이 북한의 여러 가지 요구를 어느 정도로 들어줄지 미지수다. 위기로 치닫던 정세가 대화국면으로 돌아선 것에 의미 부여를 할 수 있지만, 결국 북·미간 의미 있는 고위급 대화가 이뤄지느냐가 향후 회담의 관건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의 향방이다. 현상적으로 제재 결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명분상 1718호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거부에 따른 제재 결의가 아니라 핵실험에 따른 포괄적 제재 결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전격적으로 6자회담 복귀를 결정했듯이 향후 6자회담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도출되면, 안보리가 제재 결의를 해제할 가능성도 있다. 제재 결의 해제가 북한이 핵포기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이사국들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해제를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이번 3국 회동에서 어는 정도 논의됐을 것으로 보이며, 북한은 6자회담 복귀 과정에서 집요하게 안보리 제재 결의안 해제를 요구할 것이다.

12월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북핵문제 해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회담 재개가 곧 가시적인 성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까지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6자회담 조기 재개 합의 이후 긍정적인 신호들이 보이고 있는 점은 일단 고무적이다. 미국 중간선거 결과, 민주당의 상하원 압승은 부시정부의 대북정책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이번 선거의 이슈가 이라크 사태와 북핵문제였고, 민주당이 북·미 양자 대화까지도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의 사퇴로 상징되는 미국 내 대북 강경세력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신호다. 이라크 사태의 해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점 역시, 장기적으로 북핵문제 해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현재로서는 6자회담 재개 합의 수준이지만, 바야흐로 외교의 계절이 도래한 느낌이다. 북한은 이 같은 상황을 슬기롭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열려지고 있는 공간에서 상식을 넘는 과도한 ‘오만’은 다시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도 있다. 6자회담 과정에서 걸림돌이 발생한다고 해서, 부시 행정부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미국 내 여론을 지켜보면서 버티기 전략을 구사한다면 외부의 시선은 얼음장처럼 차가와 질 것이다. 민주당과 직접 거래를 통해 부시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는 꼼수도 미국 외교정책의 기본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다. 6자회담으로 가는 국면은 미국에게도 마찬가지지만 북한에게도 보다 통 큰 결단을 요구한다.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고 갈 것’이란 기대를 걸지만, 시간은 결코 북한편이 아니다.

김용현 (본교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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